[네이버 법률판 기고] '칠곡 계모 학대' 목격자 37명…결말 바뀔 수 있었다
“부모는 아이들이라는 화살을 쏘기 위해 있어야 하는 활과 같다. 활이 잘 지탱해 주어야만 화살이 멀리, 정확히 날아갈 수 있는 법이다.”
칼릴 지브란은 책 ‘예언자’에서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부모에 의해 자식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만약 활이 불량이거나 화살을 부러뜨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2013년 8월 한 초등학생(당시 만8세)이 복부통증을 호소하다 병원에 옮겨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명 ‘칠곡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입니다.
사건 내용을 들여다보겠습니다. 2012년 5월 A양과 친언니 B양은 계모 임모씨와 함께 살게 됐습니다. 임씨는 두 자매를 욕조에서 물고문 했고, 밥 대신 청양고추를 먹이는가 하면 엄청난 물을 먹이고 견디지 못하면 심하게 구타했습니다. 또 계단에서 양손이 묶인 아이를 밀기도 했고, 화장실도 못 가게 했습니다. 잔인한 학대에도 자매는 울거나 비명을 지를 수 없었습니다. 소리를 내면 더 심하게 맞았기 때문입니다.
A양이 사망한 그날도 학대는 이어졌습니다. 임씨는 배가 아프다고 하는 A양을 때렸고, 병원에 데려가기는커녕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시켰습니다. 임씨는 A양이 숨지자 장례식 지원비를 문의하기 위해 군청에 갔습니다. 그리고 이를 수상히 여긴 칠곡군청 직원에 의해 계모의 만행이 수사선상에 오르게 됐습니다. 방관한 친부 김모씨도 함께 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재판 결과 A양에 대한 상해치사죄 및 B양을 학대한 혐의로 임씨에게는 징역 15년, 친부에게 학대 교사 및 방조의 혐의로 징역 4년이 확정됐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13년 12월 국회에서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을 제정했고, 2014년 9월 29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아동을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한 죄(아동학대치사)와 학대 행위로 아동을 크게 다치게 한 죄(아동학대중상해)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했고 상습범에 대한 가중처벌, 친권상실 청구조항, 신고의무조항, 임시조치 및 이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했습니다.
만약 임씨에게 이 법률이 적용됐다면 결과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당시 임씨는 상해치사죄의 혐의로 형을 선고받았는데 상해치사죄의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은 이유는 적어도 A양이 사망하리라는 것에 대한 미필적 고의, 즉 죽을 것을 예상하고 받아들이는 정도가 인정돼야 하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거죠.
현행법에 따르면 이 사건은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 제4조의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 죄의 법정형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입니다. 법정형의 하한이 5년이라는 점과, 상한에 무기형을 추가했다는 것이 과거 임씨에게 적용됐던 상해치사죄와의 차이입니다.
당시 B양 학대까지 합산해 15년의 형이 선고됐는데, 신설된 법에서도 가능한 형량이기에 이 법이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무기형’이 선고될 수 있는 점을 제외하고는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A양이 숨지지 않았을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아동학대처벌특례법에는 아동학대범죄 신고의무와 절차,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사법경찰관리의 현장출동, 피해아동에 대한 응급조치 및 긴급임시조치, 임시조치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양이 죽기 전까지 임씨와 지낸 시간은 454일, 이들이 학대당하는 사실을 알고 신고를 받은 사람은 무려 37명입니다. 2012년 9월에는 자매의 교사가 몸에서 상처를 발견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경찰에 제대로 신고가 되지 않았습니다.
현행법은 신고의무자가 신고를 하지 않으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부터 학대를 막기 위한 수단들을 정착시키려는 건데요. 이 법이 시행됐다면 자매의 상처를 본 교사는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을 것이며, 계모로부터 분리하는 임시조치와 함께 친부와 계모에 대한 친권상실도 청구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법이 만능은 아닙니다. 이 법이 시행된 후에도 원영이 사건이나 준희양 사건 등 아동학대로 사망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동학대와 의심 신고에 대처하는 모습에는 분명 변화가 있습니다.
필자가 경찰로 여성청소년수사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지나가던 시민 혹은 이웃집 사람이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를 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이 법이 있기 전에는 그런 신고가 드물었지만, 언론에서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고 새로운 법이 제정된 후에는 거리에서 아이를 때리는 엄마만 봐도 신고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이 사회는 아이들이라는 화살을 쏘기 위해 있어야 하는 활과 같다. 활이 잘 지탱해 주어야만 화살이 멀리, 정확히 날아갈 수 있는 법이다.”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아동은 시민 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적 안전망을 토대로 멀리 정확히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 : 전형환 변호사
“열 사람의 범죄자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법언을 실천하고자
13년간의 경찰생활을 끝내고 억울한 사람을 돕고자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출처 : 네이버 법률판
링크 : https://blog.naver.com/naverlaw/22156033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