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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수거 알바

2022-09-23
▲이영재 법무법인YK 부장검사출신 파트너 변호사

지난달 한 의사가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에 낚여 41억원의 피해를 본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피해자의 스마트폰에 몰래 악성 앱을 깔아 모든 전화나 문자메시지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연결되게 하여 의심을 철저히 차단했다고 한다. 학력, 직업을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검사 시절 필자 이름으로 걸려 온 사기 전화에 당하고 확인하러 검찰청에 찾아온 어느 청년의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필자의 아내가 검사 사칭 전화를 받다가 반가운 마음에 남편도 검사라고 말했더니 태연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더라는 말을 듣고 혀를 내두른 일도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집단은 '총책', '관리책', '대포통장모집책', 국내에서 걸려 온 것처럼 조작해서 문자나 악성프로그램을 보내고 전화를 걸고 받는 '유인책', 현금을 받아 대포통장에 입금하는 '현금 수거 및 전달책(현금 수거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을 속여 돈을 뽑아내지만, 범인이 누군지 감춰야 하기에 외국에서 범행을 저지르면서 국내에는 대포통장과 현금 수거책이 필요한 것이다.

과거 현금 수거와 전달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얼굴이나 신원을 감추고 하였지만, 외국에 있는 다른 조직원과 달리 국내에서 활동해야 하고 검거될 위험이 크고 피해자가 의심하니까 최근 보이스피싱 일당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심부름센터에 취업하는 것으로 순진한 사람을 속여 몇 번 사용하고 버리는 수법을 사용한다.

이 일당은 채용공고로 유인한다. 검색하면 번듯하게 회사 홈페이지가 나오고, 자세한 근로조건을 제시하고, 이력서도 받고, 며칠 내로 면접 보러 오라하고, 근로계약서 양식까지 미리 준다. 이렇게 취업이 되는 것으로 믿게 한 후, 출근 전이지만 고객 서류를 받아올 일이 생겼다며 급하게 일을 시작하게 한다. 비실명 연락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받으러 가보면 그 '고객'도 의심하지 않고 건네주며 빨리 가라 한다. 받고 보면 돈이고 그 돈을 수당을 제하고 어느 계좌에 입금하라 한다. 정신없이 자꾸 돌린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어떤 불법적인 돈은 아닌지 물어보면 고객의 사업자금이라고 잡아떼거나 우리는 심부름만 하는 것이니 내용은 몰라도 되고 책임지지 않는다며 안심을 시킨다.

취업이 될 마당이니 자꾸 물어보기도 미안하다. 가난한 대학생, 구직 청년, 은퇴 노인, 외국인 유학생 등 취약계층이 무더기로 걸려든다. 간혹 처음부터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하는 걸 눈치채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속아서 시작하는 평범한 이웃이 많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금감원 직원으로 속이게 하거나 '고객'을 만나면 신원을 감추라고 지시하기도 하는데, 아예 철저히 속이려고 직책 없이 실명을 소개하라고까지 한다. 이들이 현금을 받아 현금지급기에 입금하는 모든 과정이 곳곳에 촘촘히 박힌 CCTV에 찍혀서 대부분 적발된다. 신원을 확인한 경찰관의 연락을 받고 어떻게 된 일인지 '회사'에 따지면 불통이 된다.

이런 현금 전달책에게 미필적 고의도 없다는 것을 어렵게 입증해서 무죄가 선고되는 사례가 있지만, 보이스피싱인 것은 알지 못하였더라도 어떤 범죄나 불법행위에 연루된 돈일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라도 인식, 예견하였거나 의심하고도 괜찮겠지 하고 일을 하였다면 대부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기방조죄나 사기죄의 공동정범이 성립된다. 계좌이체 대신 굳이 찾아가 현금을 수거하는 것이 이례적이기 때문에 범죄에 연루된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조직원은 잡히지 않고 현금 수거책만 구속되거나 유죄가 선고되는 안타까운 일이 폭주하고 있다. 합의라도 할라치면 혼자 검거된 '공범'이다 보니 써보지도 못한 피해 금액 전부를 내놓을 지경에 놓이게 된다.

피해자로부터 직접 대포통장에 입금받거나 피해자가 찾아놓은 현금을 훔쳐내는 사례도 있지만, 현금을 받아와 대포통장에 넣어 챙기는 통상적인 수법을 성공시키려면 원격조종이 가능한 현금 수거책이 필요하다. 앞으로 범죄가 또 어떻게 진화할지 알 수 없지만 현금 수거책이 없어지면 당장 대부분의 보이스피싱 범행은 성공하기 어려워진다. 구직자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현금을 수거해서 입금하는 일을 시키면 하지 말아야 한다. 보이스피싱 범죄 근절을 위해서 잠재적 피해자에 대한 예방 활동과 함께 어떤 경우든 현금 수거 알바는 하지 않도록 홍보하는 방안이 강화되어야 한다.


기사 출처: http://www.ulkyung.kr/news/articleView.html?idxno=4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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