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 팀장 등 관리직 이상의 직원에게 업무상 필요한 때 사용할 수 있는 법인카드를 지급하는 일은 어느 회사에서나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지급 받은 법인카드는 반드시 업무상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고 사용 내역과 출처 등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을 소홀히 하거나 법인카드를 사적 용도로 유용하여 문제가 되는 사례가 매우 많다. 법인카드를 함부로 사용하면 배임횡령 등 매우 심각한 범죄가 성립할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배임횡령은 형법 제355조에 규정된 범죄로, 신임 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재산범죄라는 점에서 죄질이 같다고 취급된다. 배임횡령 처벌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동일하고 업무상 임무를 저버리고 배임횡령을 저지를 경우,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가 인정되어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과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성립 요건을 살펴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배임은 타임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득을 얻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도록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성립하고 횡령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한 때에 성립한다. 따라서 횡령은 범죄가 기수에 이른 시점에서 해당 재물의 가액만을 산정해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데 비해 배임은 배임행위로 인해 발생한 무형의 재산상 이득까지 모두 산출하여 피해액을 파악하게 된다.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한 경우에는 대개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가 적용되는데, 업무상 배임을 인정할지 업무상 횡령을 인정할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법인카드를 지급받은 사람이 업무상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사람으로 인정되면 업무상 횡령으로 처벌이 가능하고 타인의 사무를 업무상 처리하는 자라고 볼 경우, 업무상 배임으로 처벌하게 된다.
이에 대법원은 법인카드를 개인 용도로 사용한 행위를 업무상 횡령이 아닌 업무상 배임으로 본 바 있다(대법원 2003도8095 판결). 이 사안에서 피고인 갑은 피해자 법인(회사)로부터 교부 받아 소지 하고 있던 판공비 지출용 법인신용카드를 업무와 무관한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대금을 결제하는 등 사적 용도로 사용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행위가 기업에 대한 업무상 배임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여 업무상 배임의 성립을 인정했다.
다만 이러한 판결이 있다고 하여 무조건 법인카드의 사적 유용을 업무상 배임으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인카드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사건은 너무나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개별 사건을 파헤쳐 행위자가 배임횡령에서 요구하는 신분을 보유하고 있는지, 법인카드의 용도가 무엇인지, 기업이 어떤 형태나 지배구조로 되어 있는지 등을 꼼꼼하게 파악해야 한다.
법무법인YK 청주분사무소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 이재은 변호사는 “배임횡령의 성립 요건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배임, 횡령의 형태와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섣불리 유, 무죄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혐의에 대해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법의 관점에서 실제로 범행이 성립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