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변호사의 시선] ‘팩폭’의 아이러니, 명예훼손죄
[유앤파트너스=이준혁 변호사] 요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솔직한 말을 하는 것을 두고 “뼈를 때린다”, “팩폭이다”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팩폭, 이른바 ‘팩트폭행’.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팩폭”을 가장 엄격한 법인 형법으로 규율하고 있다.
형법 제307조 ①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은 위와 같이 팩폭행위를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명명하여 다스리고 있다.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어떤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를 처벌한다. 헌데 그 내용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죄목이 다소 아이러니하다는 평가는 피할 수 없다.
명예를 훼손할 만한 ‘사실’을 자초한 사람은 A인데, A에 대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B를 왜 처벌해야 하는가. 그만큼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형법이 보호를 해줄 가치가 있는 일인가 생각해보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진실’한 사실을 발설하는 경우에도 명예 보호를 위해 형사 처벌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거의 없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형사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이에 유엔 산하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도 2015년 이래 우리나라에 관련 규정 폐지를 권고해왔다.
설사 명예를 훼손할 만큼의 일까지도 ‘보호를 받을 사생활’이라고 판단할지라도 이를 형법상으로 규율할 필요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수가 의문을 표한다. 진실한 사실의 발설로 인해 실추될 가능성이 있는 명예는 이미 ‘민사상 손해배상’이라는 수단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것.
물론 형법은 진실한 사실을 말하는 경우에 그 목적이 ‘공공의 이익’에 있는 경우 위법성을 조각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원칙적으로 처벌하고, 예외적으로 위법성을 조각시켜주는 구조라면, 설사 사실을 말하는 행위가 나중에 공익성을 인정받아 마침내 무죄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경험한 성가심과 고초는 많은 용기 있는 자들을 ‘침묵이 금이다’라는 격언 속에, 침묵하는 다수로 머물게 만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