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변호사가 본 성폭행] 모호한 준강간죄의 기준, 심신상실에 대하여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준강간죄와 강간죄를 크게 다르지 않은 성범죄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준강간죄와 강간죄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범죄다. 강간죄는 그 본질이 폭행·협박을 가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강제적인 성관계를 하는 범죄다. 반면, 준강간죄는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객관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한 심신상실 내지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성관계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에 준강간죄는 심신상실 상태가 인정돼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그런데 심신상실이란 기준이 매우 모호해 항상 문제가 된다.
대법원은 심신상실 상태에 대해, “심신상실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의 이비선악을 변식할 능력이나 또 그 변식하는 바에 따라 행동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대법원은 준강간죄에서 인정되는 심신상실을 “정신적ㆍ신체적 사정으로 성적인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준강간죄의 보호법익을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그 장애의 정도가 심신미약의 단계를 넘어 심신상실 등에까지 이를 것을 요하는 입법의 취지도 함께 고려돼야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심신상실과 구별되는 심신미약을 정의하고, 심신미약을 넘어선 심신상실이 인정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사실 현실적으로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가장 대표적인 심신상실의 예가 바로 ‘만취상태’이다. 그런데, 사람이 술을 먹고 취한 상태에 이르고 난 후 그것이 적당히 취한 상태인지, 만취상태인지 구분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에 더하여 대법원은 술을 먹고 발생할 수 있은 일시적인 기억 상실증(블랙아웃) 현상을 인정하면서 만취상태에서 기억이 없더라도 반드시 심신상실로 볼 수 없고, 블랙아웃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준강간죄의 성립을 부정하기도 한다.
물론 준강간죄라는 것이 피해자가 항거를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범죄이고, 항거를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대법원이 위와 같이 판단하고 있는 것은 개별적인 사안에서 구체적인 타당성을 담보하기 위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가장 엄한 처벌이 이뤄지는 형법이 그 성립범위 및 기준이 명확하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에 앞으로 준강간죄의 성립요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기준들이 설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