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달라" 몇년째 호소했지만…참극 못 막았다
24일 이씨의 발인이 진행된 강서구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피해자의 둘째 딸 김모씨(22)는 아버지 김모씨(48)가 이씨를 비롯해 가족들에게 살해위협과 폭력을 일삼아 왔다고 주장했다.
둘째 딸 김씨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곧바로 폭력을 행사했다"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이 심해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6번을 이사했고 휴대전화 번호도 수시로 바꿨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독립해서 혼자 사는 첫째 딸 김모씨(24)는 "어렸을 때부터 폭력이 일상화돼 있었는데 20년도 더 됐다"며 "옷걸이나 벨트로 수없이 맞고 자랐다"고 말했다.
딸들의 증언에 따르면 가족들은 아버지 김씨를 수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하루를 넘기지 않고 다시 가족들 앞에 나타났다.
둘째 딸 김씨는 "하루는 '집에 좋은 구경시켜주겠다'라고 딸들을 불렀는데 가보니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맞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부어 있었다"며 "그때 경찰에 신고했는데 아버지는 5시간 뒤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 사건의 경우 초기 경찰 수사 단계에서 격리, 접근금지 등 조치가 필요하고 말한다. 가정폭력 피의자가 경찰 조사 이후 다시 가정으로 돌아와 2~3차 가해를 할 수 있어서다. 경찰청에 따르면 매년 가정폭력범 5만여명을 검거하고 있다. 2016년엔 5만3511명까지 늘어났다가 지난해 4만5264명으로 줄었다. 올해는 9월 기준 3만287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조수영 YK법률사무소 가사법 전문 변호사는 "현재 가정폭력은 경찰 수사단계에서 가해자에게 퇴거 및 격리, 접근금지 등 긴급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이 요건이 까다롭다"며 "경찰 단계에서 가정폭력을 '집안일'로 치부해 집에 그냥 돌려보내는데 상습범이면 피해자의 피해를 고려해 빠르게 긴급임시조치를 취하도록 요건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일선 경찰서 한 수사팀장은 "가정폭력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해도 구속영장을 신청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다"며 "이럴 경우 피의자를 조사한 후 풀어줄 때가 많은데 법원의 임시조치 결정문이 조금 더 빠르게 나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폭력범의 처벌 수위도 높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여성긴급전화 1366에서 전문상담원으로 근무하는 이모씨(여·53)는 "일반폭력사건일 경우 바로 사건처리가 들어가는데 가정폭력은 가정 내 일로 치부해 쉬쉬할 때가 있다"며 "현장에서 경찰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조사에 나서야 하고 처벌의 수위도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검찰도 가정폭력을 기소할 때 가정일로 치부해 일반 형사법원이 아닌 가정법원으로 보내는데 솜방망이 처벌이 대부분 이뤄진다"며 "가정폭력도 형사법원으로 가서 정당한 수위의 처벌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서경찰서는 이날 오전 김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22일 오전 4시45분쯤 등촌동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서 이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사건 당일 오후 9시40분쯤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긴급체포됐다. 김씨는 23일 경찰 조사에서 이혼과정에서 쌓인 감정 문제 등으로 이씨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범행에 쓴 칼을 미리 준비했다. CCTV(폐쇄회로화면) 분석결과 김씨는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범행현장에서 서성거렸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는 조사 과정에서 심신미약을 주장한 사실이 없고 관련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과거 가정폭력 관련 처리사항은 발생 경찰서 등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는 소지 중이던 다량의 수면제를 범행 이후 복용했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이유는 말하지 않고 있다"며 "처방받은 수면제라고 말해 처방병원 등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사링크 : http://news.mt.co.kr/mtview.php?no=2018102416315778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