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의료용 대마 합법화해야”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는 A(18)군은 몸무게가 25㎏에 불과하고, 거의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생활한다.가족들은 A군의 뇌전증을 치료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항(抗) 경련제를 써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A군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고 있는 건 마약의 일종으로 알려진 ‘대마’다. 대마의 성분 중 하나인 칸나비디올(CBD)이 뇌전증을 비롯한 신경성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여럿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 등 해외에선 의료용 대마가 합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소지, 재배, 성분 추출 등 대마와 관련한 모든 행위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신경성 질환 환자 가족들 사이에서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2017년 설립된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가 주도하고 있다. 지난 1월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로 관련법(‘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는데, 이후 국회가 정쟁으로 공전을 거듭하며 논의가 흐지부지된 상태다.
합법화 운동본부 대표를 맡은 강성석 목사는 11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대마의 성분 중 의료 효과가 있는 것만 부분적으로 허용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는 대마의 모든 성분을 ‘마약’으로 분류해 성분 추출조차 불법”이라며 “대마의 칸나비디올은 뇌전증을 비롯해 파킨슨병, 알츠하이머성 치매, 강직성 척추염 등 여러 신경성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게 의학계의 연구결과”라고 덧붙였다.
과학계에 따르면, 대마엔 약 400가지 성분이 포함돼 있다. 이 중 환각 효과를 일으키는 주범은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이다. 흔히 ‘대마초’ 또는 ‘마리화나’로 불리는 마약의 주 성분이 바로 이 물질이다. 하지만 THC와 달리 CBD는 환각 효과가 없어 중독 위험도가 낮다. 진정 작용이 강한 CBD는 뇌전증 등 신경성 질환은 물론 우울증 등에도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CBD가 마약의 환각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CBD를 의료용으로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52개 주 가운데 30개 주가 의료용 CBD의 생산 및 판매를 합법화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마 생산 및 활용을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김범한 YK법률사무소 의료전문 변호사는 이런 흐름을 “역행적”이라고 비판했다. 모르핀, 아편과 달리 대마는 재배나 섭취가 쉽기 때문에 정부가 오히려 ‘통제 일변도’로 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의료용 대마 합법화는 19대, 20대 국회에서 두 차례 논의 됐었다. 19대 국회 때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주도로 마약법 개정 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졌지만 “일부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20대 국회로 미뤄졌다. 20대 국회에선 지난 1월 신창현 민주당 의원이 마약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개헌 등 여러 정치 현안에 묻히며 논의가 흐지부지됐다.
운동본부는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의료용 대마 합법화 논의에 다시 불을 지피겠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의료용 대마 합법화 청원 게시물은 참여자 1만 5,000여명을 돌파했다. 청원자는 “현재 다른 선진국에서는 의료용 대마가 뇌손상 환자들에게 처방되고, 그로 인해 좋은 결과를 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며 “(의료용 대마 국내 합법화에 대해) 한 번 더 깊게 생각해 달라. 아픈 아이들, 환자들을 위해선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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