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법인 YK 경찰출신 전형환 파트너 변호사
술자리가 늘어나는 여름철에는 이와 관련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특히 술에 만취하여 인사불성 상태가 되면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해 온갖 범죄의 피해자가 되기 쉬운데,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 당하는 준강간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준강간은 사람의 항거불능이나 심신상실의 상태를 이용해 저지르는 성범죄로 술자리 직후 발생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준강간은 강간에 비해 생소한 범죄이지만 그 죄질은 강간에 준할 정도로 무겁기 때문에 처벌 수위 또한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강간과 동일하다. 강간이 폭행이나 협박 등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범죄인 반면 준강간은 피해자의 상태를 기준으로 범행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사건 당시 피해자가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였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심신상실은 만취, 장애, 수면 등의 사유로 변별력이 없거나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항거불능은 심신상실 외의 사유로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를 말한다.
다만 대부분의 성범죄가 가해자와 피해자 단 둘만 존재하는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데다 이러한 공간에는 주로 내부 사정을 살펴볼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운 편이다. 따라서 사건 전후의 정황을 살펴 당시 피해자의 상태를 유추하게 된다.
사건 현장 주변의 CCTV 영상 속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습을 통해 이들의 상태를 가늠하기도 하고 동행인들의 증언이나 목격담, 사건 전후 피해자의 언행 등을 살피는 것이다. 또한 평소 두 사람 사이가 어떤 관계였는지, 얼마나 친밀했는지, 피해자의 평균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통상적으로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블랙아웃’ 상태였다 해도 겉으로 보기에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이 상태를 심신상실로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지난 해, 이러한 통념을 뒤집는 내용의 판례가 등장하여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준강제추행 사건에서 재판부는 피해자가 단순히 스스로 걸을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범행 당시 피해자가 심신상실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단순히 피해자의 행동거지만 보고 심신상실 여부를 판단하지 말고 술에 만취하여 범행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 상태였다면 이를 심신상실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유앤파트너스 경찰 출신 전형환 변호사는 “준강제추행의 심신상실, 항거불능이라는 요건은 준강간의 그것과 동일하게 해석되어 왔기 때문에 이러한 재판부의 변화가 추후 사건 해결 방향에 있어 많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기계적인 해석과 법 적용을 멀리하고 개별 사건의 특성을 면밀히 파악하여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이야기”라며 “최신 판례의 법리와 변화된 법 해석 방법을 고려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