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간음하면 준강간이 성립한다. 준강간은 강간에 준하여 처벌할 정도로 매우 죄질이 나쁜 성범죄로, 3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정신적, 신체적 사정으로 인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죄목으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치 않는 성관계를 거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때문에 준강간 사건에서는 언제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심신상실은 정신기능의 장애로 인해 성적 행위에 대한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항거불능은 심신상실 외의 원인으로 심리적, 물리적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때를 말한다. 예를 들어 잠을 자고 있다거나 술에 만취하여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처럼 정상적인 판단능력이나 대응, 조절 능력이 없는 상태라면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으로 볼 수 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준강간 사건은 대개 잠을 자거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발생한다. 이 중 술에 취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준강간 사건에서는 사람마다 술에 취한 정도에 대해 다르게 주장하여 사실관계에 대한 논쟁이 빚어질 수 있다. 피해자의 경우, 술에 만취하여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주장하지만 가해 혐의가 의심되는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분명히 성관계에 동의를 했다고 주장하곤 한다.
이처럼 서로의 진술이 엇갈리는 이유는 술에 취해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는 ‘블랙아웃’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랙아웃이란 혈중 알코올농도가 단시간에 급격히 올라갈 경우, 알코올 성분으로 인해 뇌의 특정 기능에 이상이 생겨 행위자가 일정 시점의 기억을 잃는 것을 말한다. 흔히 ‘필름이 끊겼다’고 표현하는 그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블랙아웃 상태에서도 사람은 정상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상태를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 블랙아웃 상태에서 서로 합의하여 성관계를 했다가 나중에 당시의 기억을 잃어 범죄를 의심하는 상황이 종종 초래되곤 한다. 때문에 준강간 사건을 다룰 때에는 CCTV 등을 통해 당시 피해자가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있는지, 명료하게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는 상태인지 등을 확인하여 블랙아웃 여부를 밝힌다.
다만 일상에서는 블랙아웃이라는 단어가 알코올로 인한 패싱아웃 상태까지 포함하여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실제 사건에서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패싱아웃은 알코올의 심각한 독성화와 단편적인 기억 상실이 결부된 형태로 쉽게 말해 만취하여 수면에 빠지는 의식상실 상태를 말한다.
법무법인YK 안산분사무소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 안형록 변호사는 “블랙아웃을 좁게 해석하여 무조건 준강간의 성립을 부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범행 당시 피해자의 행동뿐만 아니라 음주량과 음주 속도, 경과한 시간, 평상시 주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블랙아웃 상태인지 패싱아웃 상태인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범죄의 성립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