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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정우체국, 불법파견 아냐” 정부 손 든 법원...법이 위법 감췄나
노동법률
2023-03-31

별정우체국 근로자의 사용자는 국가가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별정우체국 근로자들은 우정사업본부가 진짜 사용자라면서 국가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가 별정우체국 근로자의 사용자라고 인정한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 판결과는 상반된 판결이다. 

 

재판부는 별정우체국장이 형식적이고 명목적인 존재에 불과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우정사업본부가 별정우체국 근로자에 대해 지휘ㆍ명령을 하고 인사 권한을 행사하고 있더라도 파견이 아니라고 봤다. 별정우체국법에 별정우체국장의 지위와 자격에 관한 사항과 우정사업본부가 별정우체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 규정돼 있다는 이유다. 이러한 규정이 민법이나 파견법에 반한다 해도 별정우체국법이 특별법으로서 우선 적용된다고 봤다.

 

별정우체국 근로자가 우정사업본부의 지시로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총괄우체국에서 일하게 된 것은 파견이 아닌 전출이라고 선을 그었다. 파견과 전출 구별 기준을 제시한 지난해 7월 대법원 판례에 따른 판단이다.  

 

28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서울중앙지법 제48민사부(재판장 이기선)는 별정우체국 직원 1531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별정우체국법이 별정우체국장을 독립한 법적ㆍ경제적 주체로 명시하고 있음에도 형식적ㆍ명목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법률의 합헌적 해석 원리와 권력분립의 관점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원 모자라 만든 '별정우체국'...진짜 사용자는 국가?

 

별정우체국은 민간이 운영하는 우체국이다. 1960년 당시 전국 읍 단위까지 우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재원이 충분하지 않자 정부는 민간 자본으로도 우체국을 운영할 수 있도록 별정우체국 제도를 시행했다. 우정사업본부가 운영하는 일반우체국과 운영 주체가 다를 뿐 동일한 업무를 수행한다.

 

별정우체국 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은 별정우체국법으로 정해진다. 법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청사와 일정 수준의 자산, 자격을 갖춘 사람을 별정우체국장으로 임명한다. 직원의 선발이나 인사에 관한 사항은 과기정통부령인 별정우체국직원 인사규칙에 따른다. 우정사업본부장이 정한 정원의 범위에서 관할 지방우정청장이 채용예정인원을 결정해 3배수로 후보자 선발한다. 국장은 이 후보자 중에서 최종 합격자를 뽑는다.

 

별정우체국 직원의 임금이나 업무운영비는 우정사업본부가 지원한다. 별정우체국장도 별정우체국법상 직원에 포함돼 봉급을 받는다. 사실상 별정우체국 운영에 필요한 청사와 일부 비품을 제외하면 임금부터 운영비까지 우정사업본부의 비용이라는 것이 근로자 측 주장이다. 여기에 우편물 취급, 우표, 공과급 수납, 우체국 예금 취급 등 실적에 따라 별도로 업무취급수수료가 지급된다.

 

별정우체국 직원들은 우정사업본부 지시에 따라 우정사업본부가 직접 운영하는 총괄우체국으로 파견 가기도 했다. 별정우체국이 폐지되는 경우에는 다른 별정우체국이나 총괄우체국으로 옮겨졌다.

 

이에 근로자들은 우정사업본부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형식적으로는 별정우체국장과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우정사업본부를 위해 일했고 우정사업본부가 근로조건을 정했다는 것이다. 별정우체국장은 독자적인 사업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우정사업본부가 별정우체국 직원들을 불법파견하고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법원 "별정우체국법 따라 국장 독립성 인정해야"

 

그러나 법원은 근로자 측 주장을 전부 받아들이지 않았다. 별정우체국장이 사업주로서 독자성을 갖추고 있다고 봤다.

 

법원 판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별정우체국법이다. 별정우체국법이 국장의 자격과 요구 자산 등을 정하고 있어 형식적인 존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정사업본부가 직원의 채용이나 인사 등에 관해 결정하는 것도 모두 별정우체국법에 따른 것으로 지휘ㆍ명령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별정우체국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규정된 자격요건과 요구 자산 등을 보면 별정우체국장이 형식적ㆍ명목적인 존재라고 보기 어렵다"며 "별정우체국 업무 수행에 가장 중요한 자산인 청사는 별정우체국장의 소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별정우체국은 업무취급수수료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특색 있는 혜택과 서비스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며 "별정우체국은 운영을 통한 수수료 수입 창출 가능성과 금융사고 등에 따른 손실 가능성도 안고 있다"고 했다.

 

별정우체국장이 채용과 인사에 관해 결정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채용후보자 중 누구를 직원으로 채용할 것인지 최종 결정 권한은 국장에게 있고 직원들은 연가 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국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결국 국장은 직원의 채용, 복무, 인사 등에 관해 비록 관련 법령에 의한 통제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이고도 상당한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별정우체국법이 위헌이 아닌 이상 적법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근본적으로 별정우체국장이 형식적ㆍ명목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결국 현행 별정우체국법이 정한 별정우체국 제도와는 양립하기 어렵다"며 "헌법재판소가 별정우체국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취지의 결정을 한 적이 없고 원고들도 별정우체국제도가 헌법에 위반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별정우체국법이 별정우체국 및 별정우체국장을 독립한 법적ㆍ경제적 주체로 명시하고 있음에도 형식적ㆍ명목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법률의 합헌적 해석 원리와 권력분립의 관점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사용자 아닌 정부가 전출?...법원 "특별법 우선 적용돼"

 

재판부는 별정우체국 집배원이 우정청장의 지시에 따라 총괄우체국에서 일한 것은 파견이 아닌 전출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7월 나온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근로자파견과 전출의 판단 기준을 최초로 제시했다. 파견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는 ▲근로자파견 행위의 반복ㆍ계속성 ▲영업성 등의 유무 ▲원고용주의 사업 목적 ▲근로계약 체결의 목적 ▲근로자파견 목적과 규모ㆍ횟수ㆍ기간ㆍ태양 등의 사정을 종합해 사회통념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반면 전출은 근로자가 원래 소속된 기업과 근로계약을 유지하면서 휴직ㆍ파견ㆍ사외근무ㆍ사외파견 등의 형태로 근로제공을 하는 상대방이 변경되는 것을 말한다. 원소속 기업에 근로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면하는 대신 전출된 기업의 지휘ㆍ감독 아래 근로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원소속 기업으로 복귀가 예정돼 있다.

 

재판부는 "근로자들과 우정사업본부 간에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근로자들은 별정우체국장과의 근로관계를 유지하되 별정우체국법의 위임을 받은 인사규칙에 의해 총괄우체국으로 적법하게 전보돼 그곳에서 별정우체국이 관장하는 우편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가 본 이유는 이렇다. 별정우체국장은 관할구역에서 우편업무를 구체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근로자들을 집배원으로 채용했던 것이지 총괄우체국에 파견하기 위해 채용했던 것이 아니다. 사회 환경 변화에 따라 별정우체국보다 총괄우체국에서 우편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경우 '집배권역 광역화 정책'에 따라 전보가 이루어졌고 이는 적법한 인사조치라는 판단이다.

 

이어 "근로자들이 총괄우체국에서 근무한 것은 우편업무의 효율성을 위한 것일 뿐, 다시 별정우체국에서 우편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복귀 명령에 따라 소속 별정우체국에서 다시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며 "복귀 가능성이 전제돼 있는 근로관계를 파견법상 근로자파견관계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부연했다.

 

우정사업본부의 지휘ㆍ명령도 부정했다. 재판부는 "근로자가 지휘ㆍ감독의 근거로 들고 있는 각종 공문 등은 업무 협조를 요청하고 일반적인 지침 및 업무상 필요한 내용을 공유하는 내용의 공문일 뿐"이라며 "근로자들과 같은 개별 집배원들이나 사무원들에게 구체적인 지시ㆍ명령하는 내용의 공문이 아니"라고 했다.

 

"실질 따라 판단했어야"...'핵심 쟁점 누락' 허점도

 

근로자 측을 대리한 문수생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이번 판결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했다. 문수생 변호사는 "누가 사용자인지 판단할 때는 계약의 명칭이나 문헌이 아닌 근로관계의 실질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 입장이지만 재판부는 실질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별정우체국법과 인사규칙에 따라 판단했다"며 "무엇보다 정부 측에서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우정사업본부 측은 별정우체국 직원에 대해 지휘ㆍ감독이 있었다는 점을 실질적으로 인정했지만 법령에 따랐다면 정당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지휘ㆍ명령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지휘ㆍ명령 여부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지만 관련해서 구체적인 판단은 나오지 않았다.

 

근로자 측은 사용자인 별정우체국장이 아닌 총괄우체국장이 인사명령을 하는 것은 민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특별법 우선 원칙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별정우체국법이 민법이나 파견법보다 우선 적용된다면서 선을 그었다.

 

우정사업본부가 별정우체국의 사용자라는 근거는 또 있다. 별정우체국 직원은 전국우정노동조합(우정노조) 소속이다. 이들은 우정노조 내 별도의 지부로 편제돼 있지 않다. 우정노조가 우정사업본부의 교섭대표노조로 교섭을 진행할 때는 별정우체국 직원에 관한 내용도 논의한다. 우정노조 단체협약에는 우정직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내용과 함께 '별정우체국 직원' 부분이 별도로 규정돼 있다.

 

근로자 측은 단체협약도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지만 재판부는 별다른 판단을 내놓지 않았다. 전보 명령도, 근로조건 결정도 우정사업본부가 했지만 재판부는 별정우체국장의 독립성을 인정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지난해 2월 나온 서울중앙지법 판결과도 배치된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사망한 별정우체국 집배원의 유족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정부를 사용자로 보고 손해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당시 법원은 "대한민국이 실질적 사용자임이 인정된다"면서 지방우정청과 총괄우체국 등 정부의 업무지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항소한 근로자들..."소송 통해 차별 시정할 것"

 

소송에 참여한 이석문 우정노조 별정전담2국장은 "일반우체국과 별정우체국 직원은 동일한 업무를 하고 동일한 체계로 운영되는데도 지위나 수당 등에서 차이가 난다"며 "차별은 수년간 지속돼 온 문제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반되지만 국가가 미온적인 자세로 일관해 오고 있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별정우체국과 총괄우체국은 동일하게 업무를 수행하지만 승진이나 보수, 복지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 사무직은 7급, 집배원은 6급까지만 승진이 가능하다. 별정우체국 지정이 취소되면 소속 직원들은 당연퇴직하게 돼 고용 불안에도 놓여있다.

 

이석문 국장은 "국가가 스스로 법과 인사 규칙 등 모든 것을 제정해 놓고 지휘ㆍ통제하면서 불법파견을 주장하니 법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적 태도"라며 "이번 소송은 차별 등 불합리한 제도를 시정하기 위한 시작으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근로자 측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지난 10일 자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문수생 변호사는 "별정우체국법은 처음 입법 취지와 달리 시대적 변화에 따라 형해화됐고 정부도 그 실질을 반영해 1970년대 말경 별정우체국 직원을 공무원으로 임명하는 특별법을 입안하기도 했다"며 "항소심에서는 실질을 반영한 현명한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사링크:https://www.worklaw.co.kr/main2022/view/view.asp?in_cate=0&gopage=&bi_pidx=35460&sPrm=odr_type$$2@@Search_Text$$%uC774%uAE30%uC120@@keyword$$%uC774%uAE30%uC120@@noidx$$





참고
별정우체국 근로자의 사용자는 국가가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별정우체국 근로자들은 우정사업본부가 진짜 사용자라면서 국가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가 별정우체국 근로자의 사용자라고 인정한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 판결과는 상반된 판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