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 씨는 갑 회사 대리 B로부터 업무 도중 음란한 농담을 듣거나 몸매 평가를 들었고, 나아가 사무실과 회식 자리에서 상습적인 신체 접촉을 당했다. A 씨는 오랫동안 계속된 B 대리의 성추행과 성희롱을 더는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회사 내에 설치되어있는 성 고충 상담부서를 찾아가 피해 사실을 알렸다. 곧이어 회사 내에서 B 대리에 대한 비공개 조사가 시작되었고, B 대리는 회사 내규에 따라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얼마 뒤, A 씨는 우연히 회사 탕비실에서 직원들이 자신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B 씨가 회식 때마다 A 씨의 몸을 더듬었는데, 사실 A 씨와 B 대리가 서로 좋아하여 연인 관계를 이어오다가 사이가 멀어지자 A 씨가 B 대리를 성희롱으로 신고했다는 내용이었다. 헛소문의 출처는 위 성희롱 사건을 담당한 징계위원 중 한 명으로 밝혀졌다.
A 씨는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한 것만으로도 힘들어하던 차에 자신을 둘러싼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듣고 너무나 큰 충격과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용기 내어 B 대리를 신고했다가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보게 된 A 씨는, 이제 회사 직원들이랑 마주치기만 해도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A 씨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B 씨의 신체 접촉 행위는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죄로 처벌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형법은 언어적 성희롱에 대해서는 따로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다. 대신 특별법에 관련 규정이 있다. ‘남녀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또는 ‘고평법’)은 ▲ 남녀의 평등한 기회보장과 대우 ▲ 직장 내 성희롱의 금지와 예방 ▲ 여성의 직업능력 개발 및 고용 촉진 ▲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 출산과 육아 등에 관한 모성 보호 ▲ 분쟁의 예방과 해결 등에 관하여 정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는 ‘직장 내 성희롱’을 “사업주·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근로조건 및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관해 고평법 제12조는 “사업주, 상급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 내 성희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고평법 제14조는, 누구든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해당 사업주에게 신고할 수 있고, 신고를 받거나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된 사업주는 지체 없이 조사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사업주는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들어 근무 장소 변경이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하며, 이 경우 사업주는 피해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거나 조사 과정에서 비밀을 지키고 성적 수치심 등을 느끼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 사업주가 위 14조를 위반한 경우 제39조 제2항에 의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게 될 수 있다.
위와 같은 남녀고용평등법의 규정에 따라, A 씨는 B 대리를 수사기관 혹은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수 있으며, 나아가 A 씨는 고용노동부 등에 회사를 신고할 수도 있다. 이로써 A 씨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조사 과정에서 피해근로자인 A 씨의 의사에 반해 비밀을 누설한 회사에 대하여 2차 피해 야기의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그런데 A 씨가 다니던 회사는 달랑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낸 것이 전부였다. A 씨는 결국 2차 피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갑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얼마 뒤, 갑 회사의 신입사원 C 씨는 다시 A 씨와 비슷한 일을 당했다.
지난 2018년 상반기에 여성가족부가 공공부문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 접수사건을 분석해보니, 총 266건 증 2차 피해를 신고한 사건은 119건, 약 45%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녀고용평등법에 2차 피해 예방과 금지 규정이 있는데도 이와 같은 피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솜방망이처럼 가벼운 처벌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제37조에서 남녀차별과 육아에 관한 불리한 처우를 한 사업주에 대해 징역형과 벌금형의 벌칙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직장 내 성희롱에 관한 사업주의 책임(제39조)은 고작 과태료 1,000만 원이 최대고, 그나마 2차 피해의 경우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만 규정되어 있다.
백번 양보해 성희롱에 대한 벌칙 조항이 없는 것은 성희롱 처벌 규정이 없는 형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개인도 아닌 사업주에게 이렇게 적은 액수의 과태료를 정한 현행 고평법에 직장 내 성희롱과 2차 피해 예방의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피해는 가해자와 사업주(회사)에 대하여 불법행위(민법 제750조) 및 사용자책임(민법 제756조)으로 인한 민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이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부담스러운 방법이다. 승소하더라도 배상액을 많이 받기도 힘들다.
이런 이유로, 이미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하여 직장 내 성희롱과 사업주의 2차 피해 야기에 대한 과태료 상한을 더욱 올려야 한다고 본다. 혹은 더 나아가 일정한 경우 2차 피해를 방치한 사업주에게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때는 신중한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안전 시스템을 잘 운영하는 사업주에는 일정한 보상도 필요하겠다.
‘악인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다. 어떤 집단이든 성희롱을 일삼는 악인이 존재할 수 있고, 그 사람이 없어지면 또 다른 악인이 나타나는 것이 직장과 사회다. A 씨가 갑 회사를 그만두고 을 회사로 간다고 한들, B 대리 같은 악인이 또 없으란 법 없다. 근로자들에게 ’좋은 상사와 동료를 만나는‘ 요행을 바라기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직급과 나이, 그리고 성별을 떠나 누구든 직장 내 성희롱과 2차 피해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직장이 어떤 별난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더라도 A 씨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업주에게 적절한 채찍과 당근을 주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출처 : 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7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