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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위험의 ‘값비싼’ 외주화, 김용균법은 어떻게 산업재해를 예방할까

2019-05-30

 



 

 

지난 2018년 12월 10일 늦은 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국발전기술 소속 24세의 비정규직 노동자 故김용균씨가 태안화력 9·10호기 트랜스포머 타워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서 정비 작업을 하던 도중 기계에 머리가 끼여 숨진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직전인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김용균씨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동료는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에 김용균씨가 나타나지 않자 동료들과 함께 김씨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각 노동자가 담당하는 설비구역이 워낙 넓고 복잡해 김용균씨의 시신은 4시간이나 지난 뒤인 다음날 새벽 3시 32분경에야 발견됐다.

 

당시 사고 작업장의 근무 규정에는 ‘2인 1조’로 작업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고, 김용균씨는 홀로 일했다. 해당 작업장의 컨베이어벨트에는 ‘풀 코드’라는 비상 정지 장치가 있었지만, 동료 없이 혼자 있었던 김씨는 이 장치를 사용해보지도 못했다. 컵라면과 고장 난 손전등 등 고인의 유품을 보고 2016년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작업 도중 안타깝게 사망한 외주 업체 직원 김군을 떠올린 이들도 많았다.

 

김용균 씨 사망 사고 이후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산업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된 하청업체 노동자의 안전에 관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2018년 2월부터 추진됐으나 국회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일명 ‘김용균법’)이 12월 26일 오후에 극적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

 

개정 산안법은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한 도급 제한 ▲도급인 산재 예방조치 의무 확대 ▲안전조치 위반 사업주 처벌 강화 ▲법의 보호 대상 확대 ▲대표이사의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계획 수립의무 신설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쉽게 말해 김용균법은 위험한 산업시설 작업을 하청업체에 맡긴 도급인(사업주)이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도록 제도를 손을 본 것이다. 특히 이 개정안은 보호 대상자를 기존의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변경함으로써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배달종사자 등도 보호의 그늘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상을 확대한 김용균법은 어떤 방식으로 산업재해를 예방할까.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채찍, 즉 처벌 강화를 통한 법의 실효성 확보다. 김용균법은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해 유해·위험 작업의 사내 도급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시 10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명시했다. 또한 도급인의 산재 예방조치 의무의 대상 장소를 확대하면서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기존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 수준을 강화했다.

 

 

나아가 위 법은 안전조치 및 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형이 확정된 후 5년 이내에 같은 죄를 범하면 그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도록 했으며, 사망 사고 발생 시 책임자를 비롯해 회사에도 함께 부과하는 벌금 상한선을 종전 1억원에서 10억원으로 대폭 상향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법령이 있어도 위반자에 대한 확실하고 엄한 처벌이 없다면 누구도 규정을 지킬 리가 없다. 처벌이 강화된 개정 산안법은 위험·유해산업의 도급인들이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에 신경 써야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두 번째 원리이자 김용균법의 진가는 바로 위험의 ‘값비싼’ 외주화를 통한 경제 논리의 도입이다. 즉 도급인들이 스스로 합리적·경제적 선택을 통해 안전 보장과 재해 예방에 힘쓰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개정 산안법 제63조 본문은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자신의 근로자와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 전 현행 산안법의 가장 큰 문제는, 하청업체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하청업체가 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이었다. 사업주는 직접 고용한 근로자가 당한 산업재해에 대해서는 배상의무가 있으므로, 이 경우 안전설비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업주로서는 많은 수급인에게 하청을 줌으로써 재해배상의 위험을 최대한 분산시키는 것이 합리적이고 당연한 선택이었다. 수급인은 이렇게 전가된 위험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저 ‘부디 오늘도 무사히’라고 비는 수밖에 없었다.

 

김용균법이 이러한 시스템의 판도를 바꿔놨다. 도급인은 수급인에게 하청을 준 작업장 사고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며, 위반 시 무거운 처벌도 기다리고 있다. 개정 산안법이 시행되어도 사업주는 여전히 하청을 통해 위험을 수급인에게 분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도급인은 좋든 싫든, 수급인에게도 자신의 고용근로자들과 같거나 비슷한 수준의 안전 보장을 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따라서 사업주는 가격이 비싸진 ‘위험의 외주화’를 감당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고, 이때 ‘제한된 자원 하에서 가장 효율을 극대화하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따라 나름의 합리적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위험근로자들은 현행 산안법보다 높은 수준의 안전 보장을 받게 된다.

 

김용균법은 이런 방식으로 산업재해를 예방한다. 우리 국민 누구도,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고 김용균씨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김용균씨의 안타까운 희생으로 모든 국민이 28년 만에 극적으로 개정된 산안법의 혜택을 누리게 됐다. 우리는 김용균씨에게 또 다른 더 큰 빚을 진 셈이다.

 

기사링크 :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63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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