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이 사문화되고 있다, 기습추행의 명과 암
[YK법률사무소 = 이준혁 변호사] 최근 유명한 대권주자였던 정치인의 미투 사건의 항소심 판결이 선고되었다. 항소심은 대부분의 범죄사실을 인정하면서 무죄 취지의 원심을 뒤집었다. 세간에서 주목하는 쟁점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이 성립하는지 여부이지만, 필자는 오히려 5차례의 강제추행이 유죄로 성립하였다는 부분이 더욱 관심이 갔다.
형법상 강제추행죄는 반드시 폭행·협박을 수단으로 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한 사람을 대상으로 추행이 일어난 경우 성립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갑자기 여성의 가슴을 만진 경우처럼 폭행·협박 없이 추행이 일어났을 때의 처벌공백을 메우고자 대법원에서는 기습추행의 법리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기습추행의 법리를 인정하고 있다.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에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되는 것이며, 이 경우에 있어서의 폭행은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대법원 2002. 4. 26. 선고 2001도2417 판결).”
하지만, 위와 같은 기습추행의 법리를 남용하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강제추행죄의 구성요건 중 폭행·협박 부분은 거의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엄연히 기습추행의 법리는 처벌공백을 메우기한 예외적인 법리로 작용하여야 하나, 일단 기습추행을 주장하기만 하면 유죄로 결론을 내린 후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법리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습추행의 법리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습추행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기습’ 적으로 추행을 한 경우에만 적용되어야 한다. 이번 항소심 판결에 있어서도 과연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이 성립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나머지 행위들이 과연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추행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