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전문변호사의 일기] 황혼이혼의 공식
[YK법률사무소 = 김신혜 변호사]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각각 다르다.”
가사전문변호사로서 수많은 사건을 대하다 보면,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오르는 때가 많다. 민법 제840조 각 호는 나름대로 이혼 사유를 정하여 ‘불행한 가정’을 정의해 보고자 하였으나, 의뢰인들의 이혼 사유는 가지각색이다. 그래서 민법 제840조 제6호는 ‘기타 혼인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라고 정함으로써 불행한 결혼생활을 정의하려는 시도와 타협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그러나 노부부의 이혼 사건, 즉 황혼이혼 사건을 접하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황혼이혼 사건은 감히 ‘공식’으로 정형화할 수 있을 정도로 몇 가지 비슷한 특징을 갖는다.
첫째, 40-50년간의 결혼생활을 정리하려는 당사자는 아내 쪽이 월등히 많다. 둘째, 이혼을 청구하려는 당사자는 성인 자녀의 이혼 권유를 받고 성인 자녀를 대동하여 이혼 상담을 위하여 방문한다(스스로 이혼을 결심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자녀의 권유를 받고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셋째, 유책배우자는 오랜 세월에 거쳐 외도나 폭행, 폭언 등 심각한 유책성을 보였으나, 그 당시에는 이혼을 엄두도 내지 못하여 증거를 확보해 둔 경우가 거의 없다. 넷째, 유책 배우자는 대부분 자녀들과도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다. 다섯째, 유책 배우자는 소장을 받은 이후에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는‘내가 뭘 잘못했느냐’, ‘너 때문에 이혼하게 됐다’라며 혼인파탄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다. 여섯째, 이혼을 어렵게 결심하셔도 이혼 소송이나 이혼 후의 삶을 두려워 하시는 분들이 많다.
이혼상담을 위해 사무실을 방문하는 어머님들(아내 쪽이 월등히 많으므로, 이렇게 통칭하겠다)의 사연은 쉽게 말하면 ‘책으로 써도 12권은 나올 정도’이다. 지난 결혼생활을 회고하면서 눈물을 보이시는 어머님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할 때가 많다. 왜 그렇게 힘든 결혼생활을 참고만 계셨냐고 여쭤보면, “자식들 때문에”, “이혼 후 생활이 막막해서”, “그때는 이혼이 큰 흠이라고 생각해서” 견딜 수 밖에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즉, 결혼과 이혼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과 남편의 외벌이 위주로 구성된 가정 경제 구조 때문에 힘든 결혼생활을 참고 견뎌오신 것이다. 요즘 혼인기간 3년 미만의 젊은 부부들의 이혼율이 점점 증가 추세이고, ‘부부가 안 맞으면 빨리 정리하는 것이 답이다’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실감이 난다.
‘어머님’들의 이혼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지난 세월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안타까운 마음 때문에 뭐 하나라도 더 잘해 드리고 싶고, 내가 진행하는 소송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내 사건처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리고 이혼 소송이 끝나면서 ‘어머님’의 삶에도 앞으로 따뜻한 햇살이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엊그제도 힘든 세월을 견뎌 오신 ‘어머님’이 자녀분들과 함께 방문하고 가셨다. 황혼 이혼 사건을 수없이 많이 다루어 보았지만, 한 건 한 건 변호사의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건이 없었다. 소장과 준비서면으로 지난 세월을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어렵게 결심하신 이혼을 디딤돌 삼아 새로운 출발을 하실 수 있기를, 상담실 문을 열고 나가는 의뢰인의 작은 어깨를 바라보며 간절히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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