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법률‘톡’]그루밍 성범죄 : 친밀, 그리고 신뢰를 처벌할 근거에 대하여
(YK법률사무소 김민수변호사)
최근 그루밍이라는 단어가 사회전반에서 사용되고 있다. 어원은 마부들이 말을 씻고 다듬어준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이러한 어원에서 파생된 만큼 초기 그루밍이란 토끼나 고양이 등이 자신의 털을 정리하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고, 이후 현대에 이르러서는 스스로 외모를 가꾸는 남자를 칭하는 단어(그루밍족)가 되기도 하였다. 자신을 치장한다는 단어에서 비롯된 이 단어는 그 의미가 다소 중립적이고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보였으나, 최근 성범죄라는 단어와 결합되면서 그 의미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것으로 변화했다.
그루밍 성범죄란 아동이나 청소년들을 장시간 어루만지며 가해자를 유일한 안식처로 생각하게 만들고, 이후 이들의 성을 착취하는 일련이 성범죄를 의미한다. 피해아동이나 청소년들이 신뢰관계 또는 복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면서 이들이 가해자에게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는 경우,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가해자와의 합의로 비춰지는 사안이 종종 발생하면서 여론은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가해자를 더욱 강하게 엄벌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그루밍 상태에서의 피해자의 행동양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건 당시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에 단순히 현출된 정황만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결국 가해자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못하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심리적 예속상태에서 지속적인 살아온 피해자들의 경우 가해자에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종속되어 자신의 피해사실 자체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왕왕 확인되는바, 이러한 전문가들의 지적은 한편으론 매우 타당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법률전문가이자 변호인의 시선에서는 이러한 그루밍 성범죄를 덮어놓고 처벌하자는 주장이 과연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며, 한편으로는 혹시나 흔히 말하는 원님재판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사람의 행동은 단지 일방적인 측면만을 바라보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 안에는 복잡하고 내밀한 고민이 담겨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복잡한 정신작용을 거쳐 표출되는 것이 인간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친밀, 신뢰관계를 쌓는 행동에 대하여 이를 쌓는 과정이 향후 발생할 성적 착취를 위함인지를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바, 단지 신뢰, 친밀한 관계가 존재한 사이에서 성범죄가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을 들어 가해자를 처벌하고자 주장하는 것은 주관적 고의나 내심의 의사를 형사상 구성요건의 영역에서 완전히 배제하자는 주장과 뭐가 다른지 걱정이 된다.
최근 세칭 보배드림 사건(CCTV상 명확한 추행장면이 없음에도 6개월이라는 실형이 선고된 사건)이라 일컬어지는 성범죄 사건으로 인하여 많은 여론이 피고인이 다소 억울한 것인 아닌가라는 의견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의 유무죄에 대한 판단을 떠나 이러한 의견이 나오는 것은 성범죄에 있어서만큼은 명확한 증거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가 인정되는 현실이 다소 통념에 반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형사법은 인신의 구속이라는 중차대한 기본권을 제한하는 바, 다른 사건에 비하여 더 엄중하고 엄격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사건을 바라볼 때, 객관적인 상황보다 주관적인 의사만을 살피고자 함은 오히려 형사법상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의 혼란만을 야기할 뿐이라 할 것이다.
그루밍 범죄는 반인륜적이며, 어떻게 보면 피해자의 가장 약한 부분을 이용하는 범죄이기에 다른 어떤 범죄보다 더 죄질이 좋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단지 일반적이거나 일상적이었던 행동까지 범죄의 가중 요소로 삼자고 하거나 이를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삼자고 하는 주장은 다소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위력이나 위계라는 이름으로 이미 이러한 그루밍 성범죄를 방지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바, 새로운 입법보다는 기존 제도를 제대로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피해자를 보호하고 무고한 사법피해자를 막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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