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료소송과 환자의 입증 책임
“만약 당신의 가족 중 누군가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였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수개월 전, 배우 한예슬씨가 양성 지방종 제거술을 받던 중, 화상을 입는 의료사고가 발생하자, 병원 측은 발 빠르게 한예슬씨에게 사과하고 의료과실을 인정했다. 필자는 위와 같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놀라움과 다행스러움,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여론에 대한 영향력이 미미한 일반인들에게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더라도 병원 측이 똑같이 대처했을까? 병원 측에서 의료과실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에 해당하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들은 정보가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 병원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조정을 신청하여 길고도 힘든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법원은 의료과오사건에서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려면 결과 발생을 예견할 수 있고 또 회피할 수 있었는데도 예견하거나 회피하지 못한 점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위와 같은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과 손해의 발생, 그리고 그 사이에 인관관계가 있음이 입증되어야 의료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내용은 실질적으로 누가 어떻게 입증해야 하는 것일까?
일반적인 소송에서는 원고에게 주장에 대한 입증책임이 있으나, 의료 소송에서는 입증 책임을 완화하여 먼저 환자 측에서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를 증명하고 그 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다른 원인이 개재되지 않았다는 간접사실들을 입증하면, 의사 측으로 하여금 의료과실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아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점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하도록 하여 입증책임을 분담시키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이 환자 측과 의사 측에 입증책임을 분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료상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비유되고 있다. 필자는 여러 의료소송을 진행하면서 그 원인으로 아래와 같은 이유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의무기록지의 작성자는 병원 측이므로 환자로서는 이미 가해자인 의사에 의해 작성, 제공되는 제한된 정보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하여, 일반인으로서는 의무기록지를 발급받더라도 의료전문용어를 해석하여 의료상의 과실을 명확하게 찾아내기가 어렵다. 이뿐만 아니라, 의무기록지를 토대로 의료과실을 찾아내어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장애물은 여전히 존재한다. 의료행위는 그 자체가 극히 전문적이고 그 대상이 되는 인체가 매우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인 면이 있으므로 법관을 포함한 일반인으로서는 의사가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서 주의를 다하였는지 여부의 과실판단을 할 수 없고 결국은 그 분야의 전문가의 조력을 필요로 한다.
즉,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전문가인 의사의 감정을 받지 않고서는 의사의 과실 유무를 판정하기가 매우 어렵고, 따라서 의사의 감정이 법관의 심증을 굳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결과적으로 의료소송에서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기록감정이나 신체감정을 수행하는 감정인인 의사로서는 동료의사의 과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공정하게 감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맹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 입장에서 의료소송이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우선, 의료사고 발생 직후 최대한 빨리 의무기록지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사의 과실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인 진료기록부, 입․퇴원기록지, 외래진료 기록지, 경과기록지, 간호기록지 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일시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사고경위서를 작성하고 담당의사에게 직접 진료내용과 이후 경과 등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고 녹음을 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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