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즈음 매우 점잖아 보이는 남성 의뢰인이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 의뢰인은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지내다 정년퇴직한 분으로, 말투와 행동이 매우 점잖은 분이었다. 아내와 무려 30년째 혼인기간을 유지하고 있었고, 슬하에 이미 성년이 된 1남 1녀를 두고 있었다.
의뢰인은 혼인 초부터 아내와 갈등을 겪었고, 10년 째 각방을 쓰고 있으며 한집에 살면서도 ‘밥은 먹었는지. 출근은 하는지.’ 등의 기본적인 대화도 전혀 하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의뢰인의 말에 따르면, 아내는 혼인기간 내내 본인을 돈을 벌어오는 기계취급을 했고, 자녀들 앞에서 본인의 험담을 늘어놓았으며 부자간의 관계도 멀어지게 했다고 한다. 반면, 의뢰인은 회사를 다니며 받았던 모든 급여와 성과급, 퇴직금까지 모두 아내에게 줄 정도로 가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했지만, 아내가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의뢰인은 이혼소송을 통해 아내가 그동안 어떻게 돈을 썼는지 알고 싶고, 궁극적으로 아내와 이혼을 한 후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의뢰인과 아내 모두 혼인관계 파탄에 대한 유책이 없어 보였고, 아내가 이혼을 원하지 않을 경우 과연 이혼이 될지 여부가 가장 큰 관건이었다.
의뢰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자, 아니나 다를까 아내 역시 10년 동안 각방을 쓰며 대화가 단절된 상태인 점은 인정하면서도, 아직 미혼인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이혼만은 하고 싶지 않다며 이혼을 극렬히 거부했다.
필자는 의뢰인 부부가 이미 10년 전 부터 각방을 쓰며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는 점, 아내는 혼인기간 동안 독단적으로 가계를 운영해 왔다는 점, 아내는 의뢰인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지 않으면서도 단지 자녀들의 결혼을 위해서 혼인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의뢰인과 아내의 혼인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정도로 파탄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부부의 혼인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경우, 그 파탄의 원인이 이혼청구인에게 전적으로 또는 주된 책임을 물어야 할 사유로 조성됐거나 청구인의 책임이 피청구인의 책임보다 더 무겁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청구인의 이혼청구는 인용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대법원 1991. 7. 9. 선고 90므 1067 판결 등 참조)도 덧붙였다.
그 결과 담당재판부는 의뢰인 부부의 혼인관계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고, 그 파탄의 원인이 의뢰인에게 전적으로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아 의뢰인의 이혼청구를 인용해주었다. 또한 의뢰인이 대기업 임원으로서 고소득을 올려온 점등을 참작해 재산분할비율은 의뢰인이 60%, 아내가 40% 정함이 상당하다고 판결하였다(통상 혼인기간이 20년인 경우, 재산분할비율이 5:5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 의뢰인은 재산분할에 관해서도 상당히 유리한 판결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의뢰인은 판결이 확정된 후 필자에게 이제는 자유롭게 여행도 가고, 남은 인생을 즐기고 싶다며 매우 행복하다고 감사 의사를 전달했다.
혹자는 황혼이혼을 두고 그만큼 살았으면 됐지, 무슨 이혼이냐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 의뢰인을 보면서 황혼이혼은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출발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그 분의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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