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재택근무 프리랜서도 근로자” 첫 판결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재택근무로 일한 온라인 모니터링 요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프리랜서 계약이 급증하고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크게 확대된 가운데 이번 판결이 유사한 직종의 재택근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재택근무’ 모니터링 요원, 구두 해고
중노위, 초심 뒤집고 ‘노동자성’ 인정
2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정용석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콜센터와 텔레마케팅 운영업체인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는 2016년 3월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네이트판 서비스’ 모니터링을 위탁받았다. A씨 등 모니터링 요원은 회사와 ‘프리랜서 도급계약’을 체결한 다음 게시글 운영원칙·저작권 위반사항 등을 모니터하는 업무에 투입됐다. 회사는 사업소득세 명목의 금액을 원천징수했다.
근무장소는 자택으로 제한됐다. 도급계약서에는 ‘모니터링 요원이 원하는 장소’로 정했지만, 채용공고에는 ‘재택근무’로 명시돼 있었다. A씨 등 2명은 SK커뮤니케이션즈 본사에서 2주간 교육을 이수한 뒤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6~7개월 단위로 8차례 걸쳐 계약을 연장하며 평일에 4~5시간, 주말에 8시간씩 근무했다.
그런데 회사는 2020년 8월 한 달 뒤 계약이 종료된다고 구두로 통보했다. A씨 등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A씨 등이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하했다. 그러나 중노위는 모니터링 요원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회사의 계약종료 통보는 서면통지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지노위 판정을 뒤집었다.
모니터링 가이드라인, 구체적 지침 하달
법원 “반복적·일상적인 업무지시”
재판 쟁점은 ‘재택근무 모니터링 요원’도 노동자로 볼 수 있는지였다. 회사는 “모니터링 요원이 지시에 따라 업무를 한 것이 아니며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며 “개인 PC를 사용해 작업했고,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체할 수도 있고 겸업도 허용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모니터링 요원들이 ‘업무장소’에 구속받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모니터링 요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사용자의 지휘·감독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 등은 외부의 지시나 명령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일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 근거로 회사의 ‘판 모니터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모니터링 요원들은 가이드라인 기준에 맞지 않는 게시물을 삭제하고, 사용자들에게 제재를 가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사전에 모니터링 구역을 정하고 근무표를 작성해 모니터링 요원에게 매일 공지했다. 모니터링 요원들은 근무표를 확인했다고 알린 뒤에야 업무를 시작했다.
나아가 모니터링 요원들은 ‘싸이월드 클럽’에 출퇴근을 보고하고, 업무보고서를 작성해 올렸다. 회사는 가이드라인과 다른 업무처리가 발견되면 모니터링 요원에게 그 사유를 소명하게 했다. 이를 수집해 평가자료로 활용하기도 했다. 실제 회사는 2018년 11월 △메신저 쪽지 전송시 10분 이상 미응답 △메신저 상태가 로그아웃·자리비움 등 전환 △업무보고서 1시간 이내 미등록 등을 부정적인 근무태도 판단사유로 삼겠다고 공지했다. 근무태도가 불량한 모니터링 요원들은 재계약이 거절되거나 재계약 기간이 짧아졌다.
재판부는 “모니터링 요원들이 회사의 지침과 다른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며 “회사는 통일적인 업무처리를 위해 공통적인 업무지침을 바탕으로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업무지시를 해 왔다”고 지적했다. 모니터링 요원들이 상시적인 지휘·감독에 놓여 있다고 본 것이다.
근무장소 ‘자택’ 법원 “현저한 제약”
“재택근무 확대 상황, 근무장소 무관”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근무장소에 대한 판단 부분이다. 재판부는 모니터링 요원이 ‘자택’에서만 일할 수밖에 없었다고 봤다. 가이드라인에는 ‘해외 IP 접속과 잦은 IP 변경은 불가하니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서 업무 진행 바란다’고 적혀 있다. 재판부는 “자택 등 한정된 장소에서의 업무수행이 요구됐으므로 모니터링 요원들의 근무장소 선택에는 현저한 제약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모니터링 요원의 보수 성격도 근로의 대가라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계약서에는 ‘도급금액’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모니터링 요원이 지각한 경우에는 금액을 차감했다”며 “회사가 지급한 금원은 근로시간에 비례해 지급된 것으로서 근로의 대가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 밖에 사측의 ‘제3자 업무대행’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배척했다. “계정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는 가이드라인 내용이 근거가 됐다. ‘겸업 허용’에 관해서도 재판부는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모니터링 업무의 특성 등으로 인해 모니터링 요원들이 업무시간 중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모니터링 요원들이 노동자라는 판단을 전제로 계약만료 통보는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A씨 등이 2년을 초과해 일했으므로 무기계약직으로 간주해야 하는데도, 회사가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은 채 근로계약을 종료했으므로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법조계는 재택근무 확대에 따른 노동환경 변화에 상응하는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정보통신의 발달로 회사가 아닌 곳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재택근무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근무장소는 중요하지 않다”며 “프리랜서 계약서를 쓴 재택근무 노동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