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7년 전 국회의원의 위로
▲ 법무법인 YK 이상영 변호사
“이 비서관, 수고했어. 그렇게 하는 게 잘하는 거야. 젊은 비서관이 소신껏 일하는데 더 열심히 하라고해야지 무슨 소리냐고 했어.” 이곳저곳에서 로비에 시달린 의원이 나를 불러서 한 말이었다.
19대 국회에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개정안(다중대표소송,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발의하자 보좌하던 의원에게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전화와 면담 요청이 쇄도했다.
대통령 공약이자 정부안으로 입법예고까지 되었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개정안은 자취를 감췄다. 의원실에서 준비한 법안은 사실상 같은 내용으로 발의된 것임에도 법무부는 입법공청회 참여 요청에 불응했다. 정부의 입장은 무엇이냐는 질의에도 답을 피했다.
합리적인 토론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전제이자 핵심임에도 개정법률안은 제대로 된 토론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고사 위기에 처했다.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의 비공개회의가 열릴 때마다 회의장 앞은 속칭 ‘업계 사람들’로 붐볐다.
개정안은 결국 좌초되었다. 그런데 또다른 상법 관련 법안인 기업활력법은 제정안임에도 불구하고 별명인 ‘원샷법’처럼 소관 상임위 – 법사위 - 본희의를 한방에 통과했다.
원샷법이 법사위에 상정되기 며칠 전, 전에는 전화도 받지 않던 법무부 간부가 의원실에 간식을 들고 찾아왔다. 법사위에서 원샷법 발목을 잡을까 걱정이 컸을 것이다. 나는 나름의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몽니 부리는 짓을 하지 않았다. 법사위는 타 상임위 법률안을 검토할 때 ‘체계와 자구’를 보는 것이라는 국회법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애써 정당화했다.
민주정에서 각자의 소신과 이익을 위해 애쓰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나 조직화 된 이들의 목소리는 종종 과다대표 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불리한 의제는 토론의 장에 올라오지 못하기도 한다. 합리적인 토론이 전제되지 않은 의사결정은 공공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어떤 의제는 의도적으로 공적인 논의의 장에 올리지않고 밀실에서, 혹은 몇몇 요직에 있는 자들에 의해서 처리되기도 한다. 이는 더 큰 문제이며 민주공화정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해악이다.
원샷법이 통과되고 소속 의원실 상법개정안은 사실상 고사되던 날,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던 나에게 의원은 괜찮다고 했다. 법안을 발의해서 이슈가 되었으니 다음 국회에서 또 시도하면 된다고, 우리가 못하면 다른 이가 이어받아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국회를 떠나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내가 준비했던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 담긴 개정 상법이 곧 시행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19대 국회에 폐기된 법률안을 20대 국회에서 여러 다른 이들이 발의했고(정권이 바뀌면서 법무부는 어느새 상법개정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또다시 폐기되었지만, 21대 국회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이어져 결국 법률안이 통과된 것이다.
7년 전에는 그냥 듣기 좋은 소리로 치부했던 의원의 말이 다행스럽게도 옳았다.
칼럼출처:http://m.news.seoulbar.or.kr/news/articleView.html?idxno=2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