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평점 사회’
# “주인장 마인드가 썩어빠짐. 그런 인성 가진 사람이 만든 음식 맛은 뻔함.” 광주광역시에 사는 이경태(46)씨가 포털 사이트에서 별점 1개와 함께 받은 리뷰 중 일부다. 최근 이씨는 연말 장사를 앞두고 4년 6개월 동안 운영해온 배달 전문 음식점을 접기로 결정했다. 배달 앱과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악의적인 평점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서다. 이른바 ‘평점 테러와의 전쟁’은 이씨가 배달 앱에 쓴 공지글에서 시작됐다. ‘별은 다섯개만 받겠다’라는 내용이 지난달 7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퍼졌고 이를 본 누리꾼들이 일명 ‘사장 버르장머리 고치기’에 나선 것이다. 별점 1개와 악성 리뷰 도배는 물론이고 가게와 개인 전화를 통한 욕설도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이씨의 아내와 아이 얼굴 사진까지 온라인상에 퍼지면서 온 가족이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씨는 “개업 초기부터 이어진 허위 리뷰를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며 “오죽하면 대놓고 낮은 평점을 받지 않겠다고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평점 테러 충격으로 아내와 함께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그는 “악플에 시달리는 연예인의 고충이 이해된다”고 덧붙였다.
# 서울 마포구에서 3년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김광섭(28)씨는 숙박시설 앱과 포털에 달린 별점을 수시로 확인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영업이 힘든 상황에서 업소 이미지에 큰 피해를 주는 혹평 리뷰까지 올라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 역시 온라인 익명 뒤에 숨어 작성된 평점 앞에 속수무책이다. 김씨는 “숙소마다 제공되는 서비스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데 낮은 가격대의 방을 이용한 후 서비스가 부족하다며 별점 1개를 남기는 경우가 있다”며 “음식점만큼이나 고객 리뷰가 예민한 업종이다 보니 업주 입장에선 억울해도 일단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과거 영화, 도서를 중심으로 이뤄진 평점 리뷰가 각종 서비스업을 평가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평점으로 속앓이하는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리뷰를 이용해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비방 목적 등 ‘갑질’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5일 대구의 한 간장게장 식당 업주는 유명 유튜버의 허위 리뷰로 폐업을 결정하며 “유튜버들의 허위사실 유포를 막아달라”고 국민청원을 올려 화제가 된 바 있다.
긁어 부스럼 될까 적극 대응 잘 안 해
배민커넥트
문제는 평점이 단순히 평가 기능을 넘어 ‘권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점을 볼모로 추가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보복성 리뷰를 남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다수의 서비스 제공자들은 허위 리뷰를 발견해도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까 우려해 적극적인 대응을 피한다. 이들 사이에서 ‘코로나19보다 무서운 평점’이란 말이 나온다. 강상용 법무법인YK 변호사는 “평점을 이용한 악의적인 비난과 테러 행위는 엄연히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에 해당한다”며 “하지만 이미지 타격과 당장의 생계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평점은 업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에 대한 평점이 실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평점의 그늘이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임금 노동자에게까지 드리우고 있다. 부업으로 2년째 카카오 T 대리(대리운전 기사)로 일하고 있는 장모(44)씨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5점 만점이었던 본인 평점이 4.8로 떨어진 사실을 확인했다. 고객이 남긴 ‘싫어요’ 평점 때문이었다. 업체 콜센터에 누가, 어떤 상황으로 불만이 생겼는지 문의해도 회사는 고객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뚜렷한 답변을 피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는 플랫폼의 발달로 다양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고객 리스크가 커진다는 단점도 있다”며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